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수첩을 만든다. 처음엔 내가 원하는 크기와, 종이와, 내용의 구성을 가진 수첩을 찾을 수 없어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이번 해에는 어떤 수첩을 만들까 고민하고, 어떤 페이지를 넣을지 구상하고, 종이를 고르고 출력하고 수십차례 자르고 접고 꼬매고 붙이는 과정들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지는 손 안의 결과물이 주는 기쁨은 돈을 주고 쉽게 손에 넣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참 즐겁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 것도 물론 보람되지만, 손가락을 쉴새 없이 움직이면서 그 과정에 완전히 몰두 할 수 있는 수작업은 진정으로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몰입하게 만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첩을 만들었다. 작년에 수첩을 쓰면서 불편했던 것들, 예를 들면 나는 자기전에 내일의 일과를 대략 기록해보곤 하는데, 그것들을 시간에 따라 기록할 수 있는 칸이 필요했다. 오전에 해야할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돈을 쓴 내역 등. 이번 수첩에는 하루 일과를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보태었다.
사실 나는 꼼꼼히 기록하는 용도로 수첩을 사용하기 보다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 잡념들을 적어 두는 데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지만 - 나중에 나이가 한참 들어서 내가 스무살 시절엔 혹은 서른 즈음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고 싶을 것 같아서 - 이번 해에 여러 경험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 특히 급하고 깜빡깜빡, 덜렁대는 성격때문에. 나의 그러한 특성은 일을 할때, 사람들을 만날 때, 모든 일상생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개인의 특성이라 합리화하며 바꾸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는데, 때론 그런 작은 실수들이 큰 사건을 만들기도 하고, 때문에 스스로에 화가 나기도 한다. 오랜시간 길들여진 습성을 쉽게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돌아오는 새해에 목표가 있다면 기록하는 습관을 통해 조금이나마 원치 않는 실수들을 줄이고 싶다.
내 수첩을 만들면서 깔끔하고 반듯한 시중의 것보다 손맛나는 수첩을 더 좋아해줄 몇 안되는 가까운 이들에게 수첩을 만들어 보냈다. 우중충한 색을 좋아하는 남정에겐 회색과 가죽을 덧댄 모양으로, 왠지 노란색이 떠오르는 스페인녀 금명주에겐 노란색 수첩을, 지하선배와 지연이 커플에겐 자주와 짙은 녹색의 커플 수첩으로, 아기를 낳은 하연언니에겐 사진과 함께 글을 적을 수 있는 아기앨범을 만들어 주었다. 오래 걸린 과정 만큼이나 마음이 뿌듯하고 따뜻해졌다. 런던에서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아(비싸기도 하고) 재량 껏 구한 재료들로 뚝딱뚝딱 만든 수첩들, 새로운 한 해 동안 그들의 곁에서 그들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