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 +작업




책상 가까이 의자를 바짝 땡겨 의자 위로 두 다리를 끌어안고 안경을 쓴다.
가장 큰 컵의 블랙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독하게 타서 옆에 두고
요새 한참 빠져서 듣고 있는 음악을 튼다.
그러면 작업할 준비 끝.
새벽 두시를 넘기고 있는 지금 시각.
윤종신의 목소리가 자꾸만 손을 더디게 만든다.
 

윤종신의 지난 앨범이 새로 나왔을 때 처음 듣고서는 어떤 낯선 느낌 때문에 처음엔 잘 안듣게 됐었다. 나에겐 이번 새앨범도 조금 낯설었다. 아마도 윤종신의 옛 노래들이 주는, 그의 노래에 대한 추억들과 익숙함들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늘 새 앨범이 나온 후 곧장 들었을 때 보다 묵혀두고 한참 뒤에 들었을 때 갑자기 뭔가가 가슴에 와서 닿는 순간이 있다. 이번 앨범엔 그의 목소리 보다 다른 가수들의 곡이 많아서 그런지 더욱 처음 한번 쭉 듣고는 잠시 묻어두었는데, 작업을 하려고 틀어놓은 그의 노래가 가슴을 푹 내려앉게 만들어 버렸다. 그 중에서도 반복해서 듣게 되는 두 곡. '나이', 이현우가 부른 '너없이 산다'.

나이
안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거.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거. 세월한테 배우는 거. 결국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거.

너없이 산다.
이현우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 곡을 듣고 있을 때면 마치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계절의 우리 +일상



그 계절의 우리.
정준일.


자전거 +일상




시간날 때면 자주 달려갔던 빅토리아 공원 가는 길.

3주 전 쯤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영국에 와서 벌써 두번 째 일이다. 한번의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했고 (런던 한달 교통비의 반 가격정도) 7개월 가량 매일 타고 다닌 것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아깝지는 않은 액수지만 그보다 마음이 허전하다. 집을 나서면 늘 세워두었던 곳에 내 자전거가 있을 것만 같아서 자꾸 두리번 거리게 된다. 반년 넘는 시간동안 내가 어딜 가던 함께였기 때문일까 마치 연인과의 헤어짐을 겪은 후 처럼 어딘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익숙한 길도 처음 가보는 길도 어디곤 함께 갔고, 그러다 길을 잃어도 자전거가 있어 나는 든든했는데 밤길에 혼자 집에 올때도 무섭지 않을 수 있었는데. 남들 것처럼 깨끗하고 좋은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나에겐 부족함 없는 자전거였는데.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나, 전화기를 잃어버린 것과는 다르다. 한동안은 새 자전거를 찾지 못할 것 같다.


수첩을 만드는 일 +일상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수첩을 만든다. 처음엔 내가 원하는 크기와, 종이와, 내용의 구성을 가진 수첩을 찾을 수 없어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이번 해에는 어떤 수첩을 만들까 고민하고, 어떤 페이지를 넣을지 구상하고, 종이를 고르고 출력하고 수십차례 자르고 접고 꼬매고 붙이는 과정들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지는 손 안의 결과물이 주는 기쁨은 돈을 주고 쉽게 손에 넣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참 즐겁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 것도 물론 보람되지만, 손가락을 쉴새 없이 움직이면서 그 과정에 완전히 몰두 할 수 있는 수작업은 진정으로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몰입하게 만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첩을 만들었다. 작년에 수첩을 쓰면서 불편했던 것들, 예를 들면 나는 자기전에 내일의 일과를 대략 기록해보곤 하는데, 그것들을 시간에 따라 기록할 수 있는 칸이 필요했다. 오전에 해야할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돈을 쓴 내역 등. 이번 수첩에는 하루 일과를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보태었다.
사실 나는 꼼꼼히 기록하는 용도로 수첩을 사용하기 보다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 잡념들을 적어 두는 데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지만 - 나중에 나이가 한참 들어서 내가 스무살 시절엔 혹은 서른 즈음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고 싶을 것 같아서 - 이번 해에 여러 경험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 특히 급하고 깜빡깜빡, 덜렁대는 성격때문에. 나의 그러한 특성은 일을 할때, 사람들을 만날 때, 모든 일상생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개인의 특성이라 합리화하며 바꾸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는데, 때론 그런 작은 실수들이 큰 사건을 만들기도 하고, 때문에 스스로에 화가 나기도 한다. 오랜시간 길들여진 습성을 쉽게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돌아오는 새해에 목표가 있다면 기록하는 습관을 통해 조금이나마 원치 않는 실수들을 줄이고 싶다.
내 수첩을 만들면서 깔끔하고 반듯한 시중의 것보다 손맛나는 수첩을 더 좋아해줄 몇 안되는 가까운 이들에게 수첩을 만들어 보냈다. 우중충한 색을 좋아하는 남정에겐 회색과 가죽을 덧댄 모양으로, 왠지 노란색이 떠오르는 스페인녀 금명주에겐 노란색 수첩을, 지하선배와 지연이 커플에겐 자주와 짙은 녹색의 커플 수첩으로, 아기를 낳은 하연언니에겐 사진과 함께 글을 적을 수 있는 아기앨범을 만들어 주었다. 오래 걸린 과정 만큼이나 마음이 뿌듯하고 따뜻해졌다. 런던에서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아(비싸기도 하고) 재량 껏 구한 재료들로 뚝딱뚝딱 만든 수첩들, 새로운 한 해 동안 그들의 곁에서 그들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지길.


일년의 시간. +일기

딱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늘 지나는 길에 어느샌가 한가득 크리스마스 장식이 매달리고 하루하루 급격히 차가워지는 공기를 느끼며, 처음 런던에 도착했던 그 무렵의 내가 떠올랐다. 정말 딱 한 해가 흘렀다. 이곳에 오기까지 참 멀리도 돌아서 기어코 이 먼 땅에 발을 내딛었던, 그 새벽의 공기가 기억난다. 그때의 런던은 이상기온으로 인해 폭설이 내려 도로마다 눈으로 덮혀있었다. 그 눈길을 뚫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내내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일년이라는 시간을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흘러왔는가. 이곳에 오려고 기꺼이 포기했던 것들,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그렇게도 확신에 찼던 그 목표 때문이었는데, 한국을 떠나오면서 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목표보다는 눈 앞에 있는 것들을 해결하기 바빴던 것 같다. 작게는  집 앞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 일부터 런던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내가 머무를 장소를 구하는 일까지. 또 난생 처음으로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아이엘츠 시험을 치루고, 포트폴리오 준비, 대학원 인터뷰, 아르바이트 등등 해결해야할 일들은 끊임없이 내 앞에 나타났다. 한고개 넘으면 또 한고개가 그러고나면 다시 또 한고개. 잦은 좌절과 회생의 반복 속에 어느 순간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가 흐릿해 지기도 하고, 긴장과 불안함의 누적으로 확신에 찼던 대답이 의문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일년이 흐른 이 시점에도 난 그다지 이뤄놓은 게 없지만, 아직도 서투른 영어때문에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리고 아직도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일년 동안 잘 버텼다고. 이만큼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오늘만큼은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김동률의 노래처럼- 오늘따라 함께 인생의 답을 고민하던, 늘 옆에서 걸어주던 나의 사람들이 너무도 그립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 김동률

난 아직도 잘 모르죠
인생이 어떤 건지 어딜 향해 가는지
혹 가고 싶은 곳을 알고는 있는 건지

난 그래도 알고 있죠
아픈 게 어떤 건지 어떨 때 편안한지
날 안아 준 그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
...
난 아직도 아이처럼
세상을 모르는지 몰라도
어쩌면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왠지 별 다를 것 같지 않아요

더 먼 곳을 바라보기
스스롤 조금 더 믿어주기
나도 모르는 동안
이만큼 와 있는 날 기꺼이 칭찬해주기


시간을 걸려 집으로 가고싶은 날 +일상

시간을 걸려 집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의 끝인데도 마치 오후의 중턱 즈음에 와있는 듯한 런던의 여름. 긴 오후의 탓일 것이다. 어떤 약속도, 딱히 갈 곳도 없는데 집으로 곧장 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날이 있다. 이십여분이면 가는 그 길을 늘 다니던 길 옆으로 난 작은 골목을 택해 걷는다. 그러다 언젠가 한번쯤 가보고 싶은 식당을 찾게 되기도 하고, 길을 헤매며 새로운 길을 배운다. 그러다 방향감을 잃고 헤매이게 될 때, 아주 조금 익숙한 길에서 벗어난 것 뿐인데도 내 작은 심장은 불안함에 콩닥거린다. 사소한 것에서 조차도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두렵지만 발을 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숨어있는 골목을 만날 기회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떠돌다 나는 오늘도 집으로 간다.

순정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난 순정을 강요하는 한국드라마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한번도 순정적적이지 못했던 내가 싫었다
왜 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상대를 사랑하는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내가 이렇게 달려오면 되는데
뛰어오는 저 남자를 그냥 믿음 되는데
무엇이 두려웠을까.

그 남자가 지키지 못해도 내가 지키면 그뿐인거 아닌가.

-


이 사랑. 정인.노영심. 정재일.




나를 붙들어줘 내 가슴에만 들린 너
참지 못할 이 떨림을 어디에다 넣을까
그만 거두어 이 사랑 가방 속에나 넣자
끝도 없는 이 사랑은 어디라도 버리자

추억도 될 수 없어 이 사랑 전부였던 그대여
이별만이 내겐 미움만이 내겐 살 길 같아서

눈물도 될 수 없어 그저 바라보던 눈길도
외면하던 너를 돌아서는 너를 다시 또 스친다

이대로 잊자 또 영원처럼 머물자
마지 못할 이 한마디 내 가슴에 떠돈다
떠나가지마 또 영원처럼 머물자
끝내 못할 이 한마디 니 가슴에 들릴까
이 사랑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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